내 생애 잊을 수 없는 아주 슬픈 카지노 이야기 4화
본문
케이는 인생의 맨 밑바닥으로 떨어 졌습니다.
제가 아는 케이는 어디로 갔을까요?
저기 천원 짜리 두개를 베팅 하고 있는 사람이 정녕 케이 인가요?
자기 앞에 초라하게 얼마 안되는 칩을 갖고 있는게 케이 이라니,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케이 앞에 나타나야 그가 덜 부끄러워 할 까 생각 하다가
저는 케이가 좀 쉽게 볼 수 있으나 약간 떨어진 그의 앞 쪽에 있는
바카라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사실 전 바카라를 즐기지 않는데 케이 눈에 띄기 좋은 자리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칩을 바꾸고 게임을 하였습니다.
물론 모든 신경은 저 쪽 약간은 떨어져 쉽게 볼 수는 없지만 두리번 거리면
볼 수 있는 케이에게 가 있습니다.
너무 눈에 띄는 자리는 제가 케이를 먼저 못 봤다는게 의심 받을 까봐 좀 떨어진
자리를 택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한시간 가까이 되었는데도 그는 저를 발견 하지 못 했습니다.
케이가 저를 먼저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는 계속 케이 쪽을 힐끗 쳐다보며 기다렸습니다.
게임을 하는 건지 뭔지 아무 생각도 없고 그 테이블서 칩을 제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배팅하는 쪽으로 따라 가다 쉬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케이가 일어나면서 이 쪽을 쳐다 보더니
그냥 고개를 돌리고 화장실로 가는 것 입니다.
저는 퍼뜩 아이디어가 떠 올랐고 화장실 쪽으로 가서
입구에 좀 떨어져 서 있으며 케이를 기다렸습니다.
화장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전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우리는 "어어" 하며 오늘 처음 만나는 상황으로 이어갔습니다.
케이는 깜짝 놀래며 반가워 했고 저도 오늘 처음 보는 것처럼 연출 하며
반가워 했습니다.
언제 왔냐고 묻는 케이에게 좀 전에 왔다고 했고,
케이는 밖으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전 케이와 제자리로 가서 칩을 챙기니 너 원래 바카라 잘 안 하잖어 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케이는 그대로 문 밖으로 나오더니 잠간 기다리라고 하며
다시 카지노로 들어 갔습니다.
당연히 칩 챙기러 가는 줄 알고도 모르는 척 하며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케이와 전 워커힐 스카이라운지에 앉았습니다.
잠시 안부를 서로 묻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나니깐
케이가 너 나 게임 하는 거 봤는데 모르는 척 했지 하고 물었습니다.
그의 눈치는 갬블러 답게 빨랐습니다.
어떻게 그리 생각 하냐 하니 다 안다는 표정 입니다.
차라리 귀신을 속이라며 저를 힐겨 보았습니다.
정말 귀신 보다 더 한 놈이었습니다.
케이는 제가 안하던 바카라 테이블에 앉은거며 제가 짠 각본을 다 아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내가 너한테 자존심이 어디 남았겠냐 하면서
지난 몇개월 동안 있었던 일을 다 얘기 하였습니다.
친척 집에 가서 돈 꾸고 그 걸 어머니가 알게 되어 한국에 찾아 나오셨다가
자기가 피한 얘기까지...
그리고 지금은 거의 바닥까지 와 있다는 얘기 등...
도저히 케이 답지 않은 이야기를 독한 꼬냑과 함께 다 털어 놓는 거 였습니다.
오늘도 카지노에서 프리로 주는 저녁 식사나 먹으려고 나왔다고...
이제는 전처럼 눈물도 안 나왔습니다.
너무 허무하고 허탈하면 아무 생각도 없고 멍 해집니다.
케이도 담담하게 말 하였습니다.
말 안해도 알 수 있는 여기로 말하면 거의 앵벌이 수준으로 산 것 입니다.
카지노에서 망하면 자존심도 없고 인간 이하의 생각으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케이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케이의 카지노에서의 종말은 이렇게 끝나는 것 인가요?
앞으로 어쩔거냐는 저의 물음에 자기도 어찌 할바를 모르겠답니다.
정말 케이 답지 않는 대답에 실망감에 분노까지 치밀러 올라 왔습니다.
위로보다는 욕을 하고 싶은 것을 참고 그래도 미국으로
데려가려고 달래기 시작 했습니다.
사실 케이 어머니가 찾아 왔을 때 미국으로 돌아 갈 까 하다가
뵐 면목이 없어 피했답니다.
저는 케이를 이틀 동안 설득 하였고 비자 문제등 여러가지를 고려하더니
결국은 여기 생활을 정리 하고 돌아 가기로 했습니다.
집은 월세가 밀려 보증금에서 제하니 얼마 되지도 않고
짐도 별로 없어서 빨리 정리 되었습니다.
한국에 올 때 케이는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아이 였는데
카지노에서 망가지고 바닥까지 떨어져
미국에 돌아 갈때는 그 몇 년 사이에 불쌍한 거지 어른이 되었습니다.
뉴욕에 돌아와서 케이는 우선 우리집에 있었고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해 그는 노력 했습니다.
어느정도 마음이 정리가 된 케이는 결국 어머니 집으로 들어 갔습니다.
집에 들어간 지 며칠 후 케이는 저를 찾아와서
하는 얘기가 어머니가 재혼을 하신답니다.
전에 미국에 처음 오셔서 영어를 배우던 교사이신 은퇴한 백인과
재혼을 하고 그의 고향인 켄터키로 이사를 간답니다.
그래서 너도 가냐고 했더니 케이는 안가고 어떻게 살까 생각 중 이랍니다.
그리고 나서 또 시간은 흐르고,
케이어머니는 케이에게 마지막이라며 양주와 와인류 파는
가게인 리쿼스토어를 차려 주고나서
사실 거의 노인 수준이나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백인 아저씨 고향인
켄터키로 이사를 갔습니다.
케이는 어머니가 자기에게 희망이 없어 보이니
그 백인을 택했다고 스스로 한탄을 했습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케이를 처음으로 그의 어머니와 같이 카지노를 데려간 사람이
그 백인 아저씨 이라는 사실 입니다.
블랙잭도 가르쳐주고 카지노를 대하는 법까지 가르쳐줘
케이가 처음에 카지노에서 잘 버틸 수 있는 발판을 형성 시켜준 분입니다.
케이는 그러고 홀로 외로이 살았습니다.
케이는 카지노 대신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피웠습니다.
한국과 달리 그 곳에서는 대마초라 불리우는 마리화나를 쉽게 구할 수있고
케이는 그 걸 즐기는 것입니다.
케이의 방황은 아직도 안 끝났습니다.
결국은 어느날 저를 찾아오더니 가게를 정리 하고 그 돈을 들고 유럽으로 간 답니다.
뉴욕서는 창피해 못 살겠다며 유럽에 가서 다시 한번 자기 마음대로 산 답니다.
80년대 당시 뉴욕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 중정 부장인 김형욱 암살 사건에
관한 소설이 히트쳤고
케이는 거기에 나오는 파리의 카지노 부터 시작해서 유럽의 카지노를 훓고
거기서 정착 하든지 아니면 라스베가스로 가서 산다고 합니다.
하루 이틀 생각 한 것도 아니고 전 그의 고집을 알기에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뉴욕을 떠난지 일년 정도 지난 후에 라스베가스에서 DHL 한통이 왔습니다.
돈 좀 부쳐 달라는 내용에 나중에 갚는다고 합니다.
자존심 강한 케이가 이런 편지를 보냈다는 것은 어떤 상황 인지 뻔했습니다.
전 그 편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당시에 마련 할 수 있는 최대 한도로 돈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그가 서울서 뉴욕에 올 때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카지노에서 모든 걸 날리고 초라했던 그의 모습...
지금 라스베가스에서 케이가 그러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후 전 뉴욕서 사업이 여의치 않아 한국으로 역이민을 고려하고 한국에 나왔다가
그 것도 여의치 않아 뉴욕에서 한참 잘 나갈 때 제 밑에서 일하던
여동생에게 차려준 도매상이 있는 조지아주 애틀란타로 이사를 가 살면서
재기에 성공 하고 결국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저도 살기 바쁘고 사업에 우여곡절을 겪는 사이에 케이와는 인연이 끝났습니다.
아직도 케이는 전에 유럽에서 돌아오면 살겠다던 라스베가스에 있는지...
있다면 어떤 모습 인지...
저에게 떠오르는 케이는 그 특유의 씨익 웃는 모습과 함께
워커힐서 이천원을 베팅 하고 있는 초라한 모습이 겹칩니다.
이제 끝났네요.
어제밤 3시간 자고 오른쪽 손가락 세개가 잘 안 구부러질 정도가 되면서까지
검지 손가락 두개를 이용하여 독수리 타법으로 이리 쓴 것은
내일 까지 가져 가기에는 저에게 너무 고통스러운 얘기 이기 때문 입니다.
매일 저녁 식사때 반주 하는 습관이 있는데 글을 못 쓸까봐 안하고
두시간 넘게 컴앞에 있었습니다.
이제 와인 한잔 하며 제 유일했던 카지노 친구 케이를 잊으려 합니다.
기억 하기엔 너무 가슴이 아프니깐요..
또 다시 기억 하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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